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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데우스 : 인간은 신이 될수있는가?

호모데우스 : 인간은 신이 될수있는가?

호모데우스 : 인간은 신이 될수있는가? 책쓰기 독서모임 <탐욕의 서재> 첫번째 책

저자 토르투가, 하우어, 페꾸니아, 돈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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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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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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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20,000

책소개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프란체스 카프카

<탐욕의 서재>는 문정동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서모임 이름입니다. 네이버 밴드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탐욕’이라는 명사가 자극적인지 자극적인 문구 속에서 많은 분들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유발하라리의 “호모데우스”책으로 시작하니 많은 분들이 ‘탐욕’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여겨 밴드에 들어오지만 거리감을 느끼는지 참여를 망설입니다.

책이 너무 어려운지, 아니면 독서 모임이라는 주제가 그리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으나 독서 모임은 날로 의미가 짙어갑니다. 그동안 문화 소비자에 머물던 우리가 문화 생산자로 탈바꿈하는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책쓰기를 전제로 한 독서모임으로 그저 읽고 끝내고 잊어버리는 대신, 나름대로 고품격 독서수준을 유지하며 한 장이라도 써서 지적 재산권을 직접 만드는 것에 점점 뜻이 모아진다는데 의미가 생겼습니다.
‘책을 사서 읽는다’ 는 개념은 소비자인 컨슈머(CONSUMER)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임은 책을 읽는 소비자에서, 생산자인 (PRODUCER)의 개념을 염두한 독서 모임입니다. 그저 읽기 만해서 끝나는 독서모임은 그리 남는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책을 읽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이름으로 된 책 1권을 내는 것을 목표로 이 독서 모임이 시작한 것 입니다.

오늘날 책을 제작하는 비용은 지난 몇 년 수천만 원대에서 제로에 가까이 수렴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을 활용하면 20만원 내외도 들지 않습니다. 그나마 표지만드는 값인데, 표지도 이제는 무료 이미지를 활용해서 만들면 제로(0)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책의 내용인 ‘콘텐츠’입니다. 콘텐츠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곧 그 사람이 가진 콘텐츠입니다. 독서는 콘텐츠의 재료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가진 사건, 경험, 인생 속 수많은 체험과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모두 책의 소재이자 콘텐츠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소중한 자원을 기록하지 않아 놓치고 있을 뿐입니다.
독서는 그저 멀리있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탐욕의 시대에 탐욕적인 글읽기 만큼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자세입니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의 시대에 탐욕적인 글 읽기만큼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자세입니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생각은 둥둥 떠다닙니다. 글로 잡아두지 않으면 망각됩니다. 둥둥 떠다니다가 사라지는 글을 기록하느냐, ‘기록하지 않는냐’에서 컨슈머로 머무르냐, 프로듀서로 진화하느냐의 차이를 만듭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땅을 바라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처럼, 읽기와 쓰기는 둘 다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의 삼중주를 이해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이를 구체화하는 것이 읽기와 쓰기입니다.
일이 더 복잡해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철학적 문장과 인문학적 채움에 더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독서모임 <탐욕의 서재>는 메마른 삶에 인문학적 소나기를 흠뻑 받는 기회로 작용한다는 것이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분들의 동일한 소감입니다.
"독서는 독서, 글쓰기는 글쓰기"라는 갈림길에서 저는 항상 읽기와 쓰기를 각각을 분리하여 인식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당연한 것 이었고, 저 또한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독서를 하고 기록을 한 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대학 시절에는 독서시간을 갖고, 글쓰기 과제를 하면서 그저 이를 학점받는 수단 으로만 취급했습니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졸업과 함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니 이 두가지는 평생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며, 사람이니까 글을 읽고 심상과 생각, 사고를 글로 표현할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독서법 관련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베껴쓰기'라고 합니다. 베껴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책에서 좋은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고, 이것은 두 번째는 내 생각을 끌어내어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행위는 글쓰기의 재미를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글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이런 루틴을 통해 독서, 기록, 그리고 글쓰기가 삶에 자리잡게 됩니다.
매일의 경험에서 글쓰기에 대한 영감을 찾으며, 읽기와 쓰기를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흥미로운 여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독서의 맛과 기록의 맛, 그리고 글쓰기의 맛을 매일 느끼며, 더 나아가 인문학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멈추어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독서를 하며 좋은 구절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하며 내 생각과 연결하여 글을 씁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독서와 글쓰기가 상호보완적이고 끊임없는 과정임을 깨달은 것이며, 이 전자책은 문정동에서 시작한 독서모임의 첫 작품입니다.

작가소개

토르투가, 하우어, 페꾸니아, 돈스피크

토르트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재학시절 문학회 활동을 했다. 기술 관련 번역을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하우어
예술경영 석사 졸업 후 문화공간에 관심이 있다. 인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공간에 투영하는 데 관심이 있다.

페꾸니아
명지대 평생대학원에서 <한국사 코디네이터>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암호화 화폐, 부동산, 대체에너지, 미래기술 등 관련 분야의 컨설팅, 플랫폼 구축등에 관심이 있어 여전히 미래를 탐구하고 있다.

돈스피크
서울 문정동에서 독서와 책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장벽을 없애는 신념을 실천하려고 문정동 집필실이자 사무실 근처에서 열심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band.us/@greedbook
https://cafe.naver.com/emodooda

목차

목차

프롤로그
저자소개

1부. 인간의 미래: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가?
1. 유발 하라리 : 호모데우스
# 토르투가 # 하우어 # 페꾸니아 # 돈스피크
2. 제레미 다이아몬드: ‘총, 균, 쇠’

2부. 인간, 그 연약함에 대하여
1. 로버트 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융 심리학이 밝히는 내 안의 낯선 나
2.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평범해서 더욱 소중한
3. 전미경: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의 고리를 끊고 진짜 변화를 불러오는 마음의 기술
4. 신동훈: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 -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고전 속 심리여행

3부. 종교 그 심연속으로
1. 도법: 내가 본 부처
2. 켄윌버: 무경계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3. 리처드 도킨스: 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4. 리타드 백스터: <참된 목자>(완역판) - 삯꾼목자에 대하여
5. 엔도 슈사쿠: <침묵> - 신은 왜 침묵하는가

에필로그
부록 돈이 아닌 도끼로 깨부수는 독서모임 <탐욕의 서재> #1

출판사 서평

시작하기 전에..

<탐욕의 서재>라는 이름을
모임의 이름으로 정한것은
'나'의 소모적 시간낭비와
정신적 에너지 낭비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앉으나 서나, Y선(유튜브선생)을 쳐다보느라
여념없는 나를 발견하면서
Y선생 없이는 못사는 내삶의 변화에
한탄스러웠기 때문이다.
빨간옷을 입은 Y선생은 매일처럼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준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나는 Y선생으로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귀호강한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Y선생에게 나의 시간을 바치고
Y선생이 채워주는 도파민과 함께
광고로 채워나갔을 뿐이다.
(실제로 유튜브 대다수 내용은 '광고'이고 노이즈이다.)

수많은 경제, 부동산, 인문, 사회 강의를 듣지만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 유튜브에서 경제방송은 책광고부동산은 강의광고
인문은 재미없고 정치사회는 노인정에서 오고가는 정치이야기와
별반 다를바 없다. )

토익시간에 배웠던 Hear 와 Listen의 차이에서
나는그저 Hear 를 했을 뿐.

그것을 안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무언가를 들은 주체가 어떤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들을 때 listen이라는 동사, 반면 hear는 주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귀에 흘러 들어왔음을 말한다.

지금도 앉으나 서나,
화장실가나 버스를 타나
내손에는 Y선생이 들려있다.

몇년째 듣고 있지만, 나는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지만
창피하게 요즘은 글을 읽어도
긴글 읽기가 귀찮아진다.

트선생과 페선생과 친하다보니
언젠가부터
더이상 길게 쓰고싶지 않다.
이제는 GPT가 나와서
더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같은 GPT선생이
계획부터 작문까지
모두 해준다.
나는 점점더 바보가 된다.
책도
뉴스도
정치도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Y선생이 들려준대로
그것이 내생각이라고
믿으면 된다.


심지어 성공에 대한 탐욕도
유행도
알고리즘이 알려준대로
'그렇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Y선생, 트선생, 페선생, 인선생...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좀더 글을 잘써보자고
아이디어를 얻자고
책을 필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만
내 머리는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탐욕도 잃어가고
생각도 잃어가고 있다.
​탐욕의 서재를 채우는 이유는
'나'의 멍청함에서 비롯된다.
멍청이는 탐욕이 없다.
그냥 눈깔사탕하나 있으면
세상 즐겁다.
잃어버린 탐욕을 찾고싶어
오늘도 낡은 책을 읽어본다.
그런데 집중이 잘 안된다.
읽어버린 글귀속에
잃어버린 탐욕을
찾고 싶기에
탐욕의 책장에서
책한권을 꺼내서
초등학생처럼 다시 읽어보는것이다.

리뷰